고백 - 한계에 대한 열등감

 고백하나 하려한다. 지금의 나의 성격과 행동을 만들어낸 근본적인 몇 가지 이유들 중 하나에 대한 고백이다. 부끄러운 일이기는 한데, 솔직하게 쓰고자 한다. 이렇게 정리해 두는 것이 마음이 편할지도 모른다.

 내가 만 스무해를 살아오면서, (그다지 많은 날을 살아오지 않았다고 이야기 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현재 내 성격과 가치관에 가장 큰 역할을 줬던 때를 생각해본다면 역시 고등학교 3년이다. 풀무학교에서 배웠던 가치들이나 생활하면서 배웠던, 그리고 겪었던 많은 일들이 현재의 나를 구성하는데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중학교 때의 나의 모습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어느정도 공부를 했고, 책을 많이 읽었었고, 심성이 유약했고, 귀찮은 일 끼기 싫어해서 조용히 지내다가 누군가 불러서 쥐어 패면 얻어맞는 그런 삶이었던 것 같다. 뭐 그렇다고 해도 크게 충격을 받거나 삶의 전환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래도 난 자존심은 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충남 홍성땅을 밟았을 때, 그리고 내가 경기도에서 그래도 공부로 잘 나갔던 놈이었고,  엄청난 혜택을 지원하며 학교에 오라고 스카웃 하기도 했으니 '농업고등학교'따위의 애들이 뭘 어쩌겠냐는-. 그래서 입학하고 한동안은 오히려 공부를 시키지 않는 학교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망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라. 27명의 친구들과 그리고 60여명의 선배들과 20명의 선생님들이 있는, 게다가 멀리 충남 홍성에서 생활해야 했으니 나름대로 낯선 곳에서 자신을 세워야할 프라이드를 만들어야만 했다. 그것이 공부였다.
 그 마음은 자연스럽게 모든 것이 '내 중심'으로 흘러가리라고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상황은 전혀 아니었다. 공부? 그 따위것은 풀무에 살아가며 하등 의미없는 것이었다. 그 보다는 친구 사이의 관계, 대화에서부터 행동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그것으로 보여지는 개인의 인간성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거기서부터 한계에 대한 열등감은 시작되었다.

 진실로 고백하기로 했으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한계로 느꼈던 것은 바로 친구 성민이었다. 그 녀석은 운동도 잘했고, 공부도 잘했고, 전교회장 출신에다 (고등학교도 그렇게 되었고), 친구도 많았고, 고민이 있는 애들은 항상 그 녀석과 대화 하려고 했으며, 생각도 깊었다. 뭐 하나 빠져주면 좋으련만, 인간적 흠이 하나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았다. 그것이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없었던 것인지. 다른 친구들은 어느정도 그런 흠이 하나라도 보여 내가 안도할 수 있었는데 성민이에게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거의 3년 내내 성민이와 나를 비교했다. 일종의 롤모델이기도 했고, 오히려 반대로 나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내가 나름대로 나의 성격을 형성하게 된 것은 '비판자'로서의 김강산이었다. 나와 같이 고등학교를 다닌 사람들은 모두 나를 기억하기를 '날카로운 비판', '이성적인 인간'으로 기억한다. 말하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고,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이 강하고, 현재 속한 위치에 대한 비판의식을 갖고있는. 말하자면 2인자가 가지게 될 속성 중 하나였다. 끊임없이 '소속'에 대한 비판을 함으로서 자기 자신을 높일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한번은 성민이와 이런 이유로 싸웠던 적이 있다. '풀무 사람들은 너무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다'라고. 이건 내 비판이었고 성민이는 동의하지 않았다. 어떤 논리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건 허다했다. 어쨌든 나는 비판했고, 성민이는 설명했다. 누가 옳다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때로는 소모적이었던 적도 많았다. 그것은 어느정도 내 열등감에서 기인하기도 했다. 인정하고,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런 한계를 느낌으로써 상당히 자신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쌓아왔던 경험과 그로인해 만들어진 나의 성격(그것을 탓하기도 부정하기도 했다.)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어떠한 위치를, 어떠한 방향을 가지고 살아야 할지 많은 고민을 했다. 열등감은 열등감대로, 노력은 노력대로 했던 것이다.
 학우회장 선거를 할 때는 아주 백미였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성민이를 지지하고 나는 몇몇 후배와 대부분 나와 성격이 비슷한 친구들을 엮어 어렵게 선거를 치렀다. 공약 내는 것도, 그리고 그것을 이해시키는 것도 어려웠다. 확실히, 선거운동할 때는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내야했기에 센스있는 친구들을 곁에 둔 성민이가 부럽기도 했다. 그래서 어느정도 밉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안주했다.

 창업할 때. 성민이는 기억할는지 모르겠지만, 그 이야기를 확실히 했다. 언제였냐면, 창업하고나서 술마시고 둘이서 바다를 나갔을 때. 대략 걸어서 15분 정도 되는 거리를 서로 껴안고 울고 별 쌩 지랄을 다하면서 울고 짜고 했다. 고백했던 것이다. 내가 가졌던 열등감에 대해서, 그리고 그것을 어느정도 넘어섰을 때 느꼈던 친구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그 친구가 앞으로도 계속 내 옆에 있으리라는 안도감이었다. 더욱 내가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은, 성민이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함께 살아가면서 느끼는 어느정도의 피드백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에 그 마음이 편해졌다.

 한계에 대한 열등감은 그래서 벗어났다. 대학교에 와서도, 나는 단 한번도 누군가에게 열등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저 그 사람이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으리라고, 그것을 닮고 싶으면 노력하면 되리라고 생각했다. 근성처럼 남아있던 2인자로서의 열등감을 벗어냈던 순간이었다. 누군가 내 옆에 있지 않다고 불안해하지도 않았고, 그 이유에 대해 고민하기는 했어도 전 처럼 비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다른 이유로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해도 안되는 것. '한계'를 너무나 명확하게 느끼는 것들이 생겼다. 그런데 열등감을 벗어낸 그 기억이 남아있는지 쉽게 그것을 넘겨버리고 있다.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한계와 열등감에 대한 대처방식만 유들유들해졌을 뿐, 전의 그것을 따라잡겠다던 강한 의지가 사라졌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돌아가고 싶다. 그때, 그 다짐을 기억하고 싶다. 항상 날카로웠던 생각과, '왜?'라는 물음을 끊임없이 가졌던 시절로 돌아가 다시 살아가는 만족을 느껴보고싶다.

by 붉은깃발 | 2009/05/19 01:30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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